해외경제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2월 2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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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해밀러의 스마트한 세상사 :)!!

현재 우리나라가 상대국가와 어느정도의 경제적 관계인지를 한눈에 파악하기에 좋은 것이 KOTRA의 국가지역정보 웹사이트입니다.

해당 웹페이지에는 우리나라와 무역,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가진 나라들의 국기가 나오는데,

해당 국가의 국기를 클릭하면 그 나라와 우리나라가 현재 갖고있는 협정부터, 최근 양국관계의 동향까지 핵심정보를 요약해서

그밖에도 코트라의 해외시장뉴스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경제동향과 경제전문가들의 해외경제 심도있는 인터뷰, 게시된 경제 자료까지

양질의 해외경제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국가·지역정보 - KOTRA 해외시장뉴스

3>외교부 웹사이트 국제경제동향 코너

바늘가는데 실간다는 속담처럼, 경제가 가는데 외교가 따라오고, 외교가 가는곳에 경제가 따라 옵니다.

오늘날 외교에 있어서 경제의 비중은 상당한 편이고, 상대국가와의 좋은 외교관계 없이는 좋은 경제관계가

외교부의 양자경제외교총괄과에서는 시시각각 바뀌는 국제경제동향을 파악해 외교에 보탬이되도록, 나아가 기업과 국민들에게 좋은

해외경제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당 웹사이트 링크를 타고 들어가시면 정말 다양한 나라의 경제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는걸 아실 수 있고,

pdf파일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주로 우리나라와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요국가의 경제동향 파악과 경제전망에 대한 보고서가 많은편 입니다.

4>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우리나라에서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기로 손꼽히는 집단 중 하나는 한국은행일 것입니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시스템 웹사이트에 방문하셔서 국제통계를 검색하시면 지구촌 여러나라들의 경제관련 통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외경제정보를 찾을땐 그 나라의 경제통계를 알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유용합니다.

5>KDI 월간 경제동향

KDI 한국개발연구원 - 전망 및 동향 - KDI 경제동향 - KDI 경제동향 2020. 11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의 완만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경기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유럽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이 가속화되면서 경기 하방위험이 확대

KDI는 경제와 사회전반에 걸쳐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정보를 내놓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있는 곳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오늘 소개드린 모든 기관의 연구진들 한분한분이 용호상박이겠지요^^

이런 KDI에서는 매달 기업인, 국민들도 공평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월간 경제동향을 발간 pdf파일 형식으로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있습니다.

해당 동향지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반드시 세계경제동향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자료가 잘 정리되어있는 만큼 관련 분야 종사자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6>한국이 해외경제 정보가 중요한 이유

(사진=픽사베이)

강물처럼 굽이쳤던 최근 10년의 세계경제

는 금융의 역사를 통해 투자와 개인 차원의 ‘절제’를 되새겨보는 시리즈입니다. 2화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재정위기를 거치며 얻은 교훈을 다룹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이 상반된 정책을 펼치며 무엇이 더 효과적이었는지 드러났는데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죠. 이번 글은 분량이 조금 깁니다. 따뜻한 음료와 함께 읽어보시는 걸 권합니다.

강가에 앉아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해외경제 알 수 없을 때 강가에 갔습니다.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살을 보았습니다*.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흘러가지 않아요. 물살은 굽이치거나, 돌에 부딪힐 때 오히려 역류하기도 하더군요. 갈 지자(之)를 그리며 횡보하는 잔물살을 보기도 했습니다.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의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표현을 차용했습니다. – 저자 주

앞이 아니라 옆으로 쏘다니다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물살의 흐름은 제 삶 같더군요. 그렇지만 위에서 아래로, 큰 방향을 찾아가는 강물을 보며 저 역시 결국은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잔물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큰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맞추자고, 여러 발짝 물러서서 먼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람 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내 일과 사업, 나라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가늠하기 힘들다면, 눈앞의 잔물살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닌지 살펴봅시다. 현업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서 나, 국가, 세계의 큰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먼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좁아진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요즘처럼 경제의 큰 방향이 바뀔 것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번 글에는 최근 10여 년 간의 경제, 금융시장의 큰 흐름을 짚어 보았습니다. 큰 흐름을 볼 수 있다면, 내 앞날을 계획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일들*

최근 10여 년의 경제 흐름을 결정한 가장 큰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이 위기로 인해 진원지인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1930년대에 겪은 대공황이라는 블랙홀 문턱까지 다시 끌려들어 갔다가 겨우 튕겨져 나왔습니다.
* 주요 참고자료로 애덤 투즈의 《붕괴: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읽고, 책에서 서술한 순서와 동일하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전개, 미국의 대응, 유럽의 대응 순서로 글을 썼습니다. 책의 내용 외 다양한 참고자료를 활용하였습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영국 대처 행정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규제 완화 및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작은 정부 기조가 규제 강화와 큰 정부 지향으로 일시에 바뀌었죠.

또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엄청난 양의 돈(유동성)을 풀어 금융시장에 돈이 계속 돌도록 하는, 양적완화와 같은 적극적 통화정책이 위기 대응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금리가 크게 하락하여 0과 1 사이를 오가는 제로 금리 시대가 열렸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주식과 주택가격 상승을 초래했습니다. 집과 주식 등 자산을 가진 사람들만 더 부자가 되니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요.

위기의 명암은 국가별로 엇갈렸습니다. 망할 것 같았던 미국은 완화적 통화정책 등을 통해 가장 빨리 경제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한편 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2012년 유럽 재정위기까지 겪으며, 경제 회복도 매우 더뎠습니다.

중국에게는 이 위기가 국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였죠. 참고로 1970년대의 소련, 1980년대의 일본은 모두 미국 GDP의 40% 수준까지 왔을 때 미국 견제를 받아, 세계 1강에서 2강 체제로 가는 길을 저지당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딱 그 시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이 한참이던 2010년이었어요. 미국이 위기 때문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중국은 견제와 간섭을 덜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2020년 기준 미국 GDP의 70%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거죠.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 정치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경기침체와 실업, 심화된 자산 불평등에 시달리게 된 국민들은 그들의 불행이 외국인, 이민자 등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선동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같은 이들이 집권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악의 근원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이쯤 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악의 근원으로 불러도 되겠죠. 금융위기는 왜 발생했을까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올랐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자, 많은 이들이 빚(주택담보대출)을 내어 집을 사들였어요.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여러 채를 매입하며 가격 상승을 즐겼습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발달한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팔았습니다. 이러한 금융상품의 신용도는 미국 국채와 비슷하지만, 국채보다 수익률이 더 높았습니다. 안정성과 수익성을 겸비했으니,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죠.**
* 대표적인 상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가지고 있을 경우 받게 되는 대출 상환 원금과 이자를 바탕으로 만든 채권인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와, MBS를 모아서 다시 채권을 만들어 판매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등이 있습니다. – 저자 주
**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러 금융기관들이 미국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보유했었습니다. – 저자 주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가격은 계속 올랐고, 주택 관련 금융상품의 인기가 좋다 보니, 금융기관은 주택담보대출을 계속 공급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그동안 집값 상승으로 인한 부자 행렬에 끼지 못했던, 신용도가 낮고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만들어 공급했고, 이를 모아 금융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 금융기관과 펀드 등에게 팔았습니다. 높은 대출금리 등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곳곳으로 퍼진 셈이죠.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순 없습니다. 2006년을 정점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대출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이용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부터 연체가 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가지고 만든 금융상품 투자자들, 주로 금융기관 및 펀드 등에게 투자 원금과 이자를 제때 지급하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주택가격은 그 후에도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어요. 이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뿐 아니라 다른 주택담보대출도 원금과 이자 연체가 발생했죠. 이들 상품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의 손실 발표가 이어졌고, 심지어 파산하는 기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1990~2009년 케이스-실러 미국 주택가격 지수 (출처: FRED)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손실과 파산이 늘었다는 점이 아니라, 어디서 문제가 발생할지 알기 어렵다는 데에 불안을 느꼈거든요.

전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 등이 미국 주택담보대출 기반 금융상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손실과 파산이 미국 외 어느 나라, 어느 금융기관에서 발생할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들 상품은 구조가 너무 복잡해, 상품 보유액 중 손실이 얼마나 발생할지 추정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정확한 손실액을 알 수 있다면 그에 근거해서 매수, 매도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실액을 알 수 없으니 ‘헐값에라도 일단 팔고 보자’로 귀결됐습니다.

요약하면 누가, 얼마를 손해 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금융시장을 마비시켰고, 전 세계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투자심리가 거의 동시에 얼어버렸다는 점, 이게 진짜 문제였습니다. 팔 사람만 넘치고 살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불안은 정상적인 금융거래까지 중단시켰습니다. 금융위기 전 금융기관들은 매우 싼 수수료(이자)를 주고 다른 금융기관에게 돈을 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확산되자, 30일 이내의 매우 짧은 만기로 돈을 빌리려고 해도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줘야 했습니다. 거래 상대방의 상환능력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릴 때 금융기관이 보유한 금융상품을 상대방에게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오는 레포(Repo) 거래도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상대에게 맡기면 싼 이자를 주고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담보로 인정해주지도 않았습니다.

📌 Repo (Repurchase Agreement, RP)
일정기간 경과 후 정해진 가격으로 환매하는 조건으로 채권을 매매하는 것. ‘환매조건부채권매매’라고도 부른다. Repo 거래는 채권을 담보로 하는 채권매매형태로 이뤄지나, 실제로는 단기자금 조달과 운용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단기자금 대차거래의 성격을 지닌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고.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들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이들은 장기는 물론 단기 자금조차 조달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가 증가했으니 받아야 할 원금과 이자도 들어오지 않았고요. 게다가 보유 금융상품을 담보로 돈을 빌리려 해도 담보 인정이 안되니 빌릴 수도 없었죠.

결국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갚지 못한 곳부터 파산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곳이 당시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였어요. 리먼이 파산신청을 한 날짜는 2008년 9월 15일입니다. 보통 이날을 기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었다고 봅니다. 대공황이라는 괴물이 다시 세계를 삼키려고 입을 쩍 벌렸습니다.
* 나머지 투자은행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메릴린치(Merrill Lynch). – 저자 주

과감하고도 엄청난 유동성으로 위기를 모면한 미국

리먼 파산 이후, 대공황 시즌2를 염려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이하 연준)와 재무부는 더 이상의 초대형 금융기관 파산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또 다른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극도로 불안해진 시민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모두 인출하고(뱅크런), 돈을 빌려 주려는 금융기관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자금이 부족해진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도 높아지면서 경제는 심각한 침체 상황에 빠질 겁니다.

미 연준과 정부는 미국 최대 보험사 AIG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시작으로, 대형 은행 및 증권사(투자은행)들에게 추가 자본금을 투입하며 넘어지려는 금융기관 등 뒤에 버팀목을 세웁니다.
* 미 연준은 AIG에 1,820억 달러(약 193조 원)의 구제금융을 공급했어요. 참고로 한국의 2021년 예산 규모는 558조 원으로, 당시 AIG 구제금융 해외경제 규모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5%에 달합니다. – 저자 주

또한 기준금리를 이미 0% 수준으로 내린 데 이어, 금융기관이 보유한 국채, 심지어는 주택 관련 금융상품까지 사들이며 이들 상품의 금리를 낮추고, 금융기관이 예금과 대출, 투자활동 등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를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라고 합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왑 계약도 맺었어요. 자국 외환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등 전 세계로 확산된 금융위기가 국가 파산 등으로 더 심화되지 않도록 지원했죠. 일련의 조치를 비유하자면, 물이 말라버려 모래 바닥에 처박혀 있는 배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물은 돈을, 배는 금융기관을 의미해요.

📌 통화 스왑 (swap)
한도를 정해 자국 통화와 바꿀 수 있는 계약. 본문의 경우, 달러와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연준과 중앙은행의 계약을 말한다. 자국 금융기관들의 달러가 부족할 경우 통화스왑 한도가 매우 큰 한국은행에서 언제든지 달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외환 시장에서의 달러 부족에 따른 환율 폭등 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한국도 통화스왑계약 체결 이후부터 외환시장이 안정됐다.

양적완화에만 투입된 달러 규모는 약 4.5조 달러였어요. 한화로 약 5,400조 원,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10배에 이릅니다. 통화스왑 등 다른 조치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더 컸고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죠.

이처럼 과감하고도 엄청난 규모의 통화공급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미국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달러를 보유한 기축통화국입니다. 한국의 원화는 거의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해외에서는 사용되지 않아요. 따라서 양적완화를 통해 원화공급을 크게 늘린다면 그 돈이 거의 국내에 머물게 되므로,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자산과 물가만 크게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겠죠.

반면 미국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므로 이럴 가능성이 낮습니다. 전 세계적인 위기상황에서는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점 또한 달러 가치 하락 우려를 덜어주고요.

둘째, 미 연준은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연준은 시중에 통화공급이 충분치 않았는데도 금리를 올린다거나, 통화공급을 줄여버리는 등 긴축을 실시했고, 이로 인해 공황을 지속시켰다는 비판*을 받았죠.
*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지된 금본위제 때문인데요. 금리를 인상하여 미국이 보유한 금이 다른 나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했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상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 저자 주

따라서 미국은 경제위기 때의 통화정책은 부족하기(too little)보다는,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too much) 많은 유동성을 경제회복이 완연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 역시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통화를 충분히, 지속적으로 공급하지 않고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면 줄였다가, 침체되는 것 같으면 늘리는 행태를 반복했던 점을 원인 중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2008년에 시작된 양적완화는 미국 경제가 회복세가 완연해진 2015년 12월 말에서야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미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과감하고 일관되게 추진된 점이 오늘날의 미국 경제 회복의 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 0~0.25%에서 0.해외경제 25~0.5%로 기준금리 범위를 인상했습니다. – 저자 주

보다 빠른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경기를 부양하는 정부지출 확대, 즉 확장적 재정정책이 뒷받침돼야 했습니다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이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미 의회를 장악하는 바람에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확장적 재정정책이 과감하게 집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여야의 초당적 합의가 어려운 건 미국 역시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한 발 물러나면서 위기를 더 키운 유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고,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가 미국 금융기관이므로 얼핏 미국에 한정된, ‘미국의 위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유럽 금융기관들이 다수의 미국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도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거나 파산 위기를 겪었습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금융기관뿐 아니라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유럽 내 취약국가가 국제통화기금(이하 IMF), 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미국의 위기는 유럽 전체로 전이됐습니다. 유럽재정위기의 시작이었죠.

유럽은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스왑, 미 연준의 유럽 금융기관 보유 채권 매입 등 미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의 도움을 받아, 미국발 충격을 어느 정도 막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 곪아가던 유럽 내부 문제가 터져 나오고 말았어요. 화폐만 합치고, 재정과 정치는 따로따로인 EU의 한계가 드러났죠.

미국과 달리 수천 년을 다른 나라로 존재해왔고, 작게는 서로 간의 전쟁, 크게는 1~2차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는 돈을 통일하고 나아가 정치, 경제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1993년 EU(European Union) 출범 이후, 유럽은 이 엄청난 일을 차근차근 추진하여 1999년 단일화폐 유로(Euro)를 도입하고, 각국의 통화정책 주권을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에 넘기는 등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반면 재정정책은 여전히 각국 재량이었고, 정치통합도 어려웠죠. EU 내 부국(독일 등)과 빈국(그리스 등)의 경제력, 서로를 향한 국민들의 인식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재정위기의 도화선이 된 그리스를 중점적으로 살펴봅시다. 그리스는 EU 가입 후 유로를 사용하면서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자국 화폐(드라크마)를 사용하지 않으니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늘릴 필요가 없어졌고, 그리스 국채 금리도 유로 사용 이후 하락했습니다. 예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셈이죠. 그리스의 정부부채는 GDP의 100%를 초과한 채로 계속 유지됐습니다. 원래 유로 사용 국가는 정부부채를 GDP의 60%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데, 그리스는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 등 재정적자 확대, EU 가입 당시 그리스 재정적자 과소추정(분식회계)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09년 이후 그리스의 국가신용도는 크게 하락했고, 그리스 국채금리는 폭등했죠.

결국 그리스는 2010년 5월 IMF와 EU에 1차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아일랜드도 그해 11월 구제금융을 받았고, 국가 재정이 취약했던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에도 비슷한 일을 겪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됐습니다. 또 한 번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이었어요.
* 그리스는 2차(2012년 3월), 3차(2015년 8월)에 걸쳐 총 2,890억 유로(약 370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2018년 8월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습니다. – 저자 주
** 포르투갈은 실제로 2011년 4월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 저자 주

유럽은 미국처럼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재정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 연준과 달리, 유럽중앙은행(ECB)은 회원국 국채를 자유롭게 매입할 수 없었고요*. 회원국 간 합의와 지원 없이는 적극적 통화공급이 어렵다고 오히려 한 발 물러섭니다.
* ECB는 회원국의 신규 발행(발행 시장) 국채를 매입할 수 없었고, 이미 발행된(유통시장) 국채만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ECB의 국채 매입행위가 시장 유동성 공급을 넘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데요. 이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피해를 겪은 독일의 입김이 작용한 조치로 보여요. ECB가 신규 국채를 계속 사주는 행위는 회원국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는 걸로,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수 해외경제 해외경제 있기 때문이죠. – 저자 주

EU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형성된 재원으로 그리스처럼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한 나라를 구제하는 데 부정적이었고, 이런 여론을 메르켈 총리도 거스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EU나 ECB 차원에서 그리스나 아일랜드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통화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었어요.

ECB는 뒷짐을 지고 있고, 인플레이션과 재정지원에 부정적인 독일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각국이 적극적인 통화, 재정정책을 추진하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국가부도가 코 앞에 다다른 정말 긴급한 상황까지 가서야 찔끔찔끔 내놓는 대책으로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까지 전이되는 위기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죠.

개별 국가 입장에서도 자율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ECB에 일임한 것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출경쟁력이 생기는 등 경제의 자동조절 기능을 기대할 수 없어 정부 지출(부채)만 더 늘리는 악순환으로 작용했거든요.

이런 혼란은 새로운 ECB 총재로 부임한 마리오 드라기가 나서서 2012년 9월, 위기에 빠진 회원국 채권을 무제한으로 매입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금융시장은 차차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그 후에도 2015년 8월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등 여진은 계속됐어요.

결국 미국과 달리 유럽의 대책은 유럽과 세계를 구하기에는 역부족(too little)이었던 것이죠. EU 개별 회원국의 입장과 사정이 모두 달랐던 걸 감안하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감함의 승리, 그런데 지금은?

미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완화적 통화정책을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위기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과감한 재정지출 확대까지 할 수 있었다면 회복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면 유럽은 EU 회원국의 엇갈리는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위기 초기에 통화정책을 신속하고 과감히 집행하지 못했고, 재정정책도 긴축으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미국보다 경제회복 또한 늦어졌죠. 따라서 ‘위기상황에서는 과감하고 지속적인 통화,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위기 대응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전 세계의 대응은 신속하고 과감했습니다. 미 연준은 금리 인하, 국채 매입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빠르게 시행했고, 경기부양책을 쏟아냈습니다. 유럽도, 한국도 비슷한 조치를 신속히 취했죠. 그 덕분인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우려는 금세 진화됐어요.

이에 대해,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냈던 박복영 교수는 ‘팬데믹 경제위기는 다른 위기와 다르다’는 칼럼을 통해 정책 여력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컸다기 보기는 이런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들이 수용할 만했기 때문으로 진단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돌이켜볼까요? 돈을 더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위험 채권에 투자한 금융기관이, 구제금융을 받자 자기 보너스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들을 왜 구제해야 하냐며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했었죠. 유럽 재정위기 때는 그리스에 대한 독일 국민의 불만이 컸고요. 돈은 그리스가 펑펑 쓰고 그걸 해결하는 데 왜 독일 돈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 미국 AIG가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거액의 보너스를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미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오바마 행정부도 궁지에 몰렸습니다. – 저자 주

하지만 바이러스에게 화풀이를 할 순 없겠죠. 박복영 교수는 국민 저항이 크지 않았던 점이 재정, 통화정책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더해,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재정위기를 거치며 얻은 교훈 또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위기에는 넘칠 정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교훈이죠. 덕분에 코로나19가 또 다른 대규모 경제위기로 비화(飛火)하는 걸 막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가오는 위험, 인플레이션

이제 백신에 이어 치료제도 개발되고, 국민 상당수가 백신 접종을 받아 ‘위드 코로나’로 해외경제 전환되는 상황에서 그간 잊었던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사실 그동안 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는가는 오랜 의문 중 하나였습니다. 과거 10여 년간 돈을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이 풀었는데 왜 물가가 오르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는 중국을 원인으로 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금융기관들이 돈을 쌓아놓고 풀지 않아서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원자재, 전기요금은 물론 각종 서비스 요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오르는 추세죠. 그간 인플레이션 우려를 기우라고 하던 연준도 이제는 이를 경고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나을 텐데, 경제가 침체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 중 최대 사건이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으로 흘러들어 서로 다른 큰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위기 대응은 ‘투머치’가 답이라는 걸 알려줬죠.

이번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을 통해 우리는 ‘투머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확인했어요. 동시에 잊힌 고대의 악마*, 인플레이션을 다시 불러내는 건 아니냐는 새로운 우려를 갖게 합니다. 아직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리스크 깜빡이를 넣고 움직일 때입니다.
* J.R.R 톨킨 원작의 영화 1편에 나오는 발록(Barlog)에 대한 묘사를 차용했습니다. – 저자 주

단행본
마이크 블라이스, 《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Austerity: The History of a Dangerous Idea) 》, 부키, 2016
벤 버냉키, 《 행동하는 용기(The Courage To Act) 》, 까치, 2015
애덤 투즈, 《붕괴: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 아카넷, 2019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해외경제 I Talk Like a River) 》, 책읽는곰, 2021

저널 및 보고서
박복영. ‘서평(書評): 《붕괴: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아카넷, 2019’. 경제사학, vol. 71, pp.519-523, 2019.
윤성훈, < 테마진단 제 63호: ECB의 무제한 국채매입정책과 연준의 QE3: 의미와 시사점>, 보험연구원, 2012.11
김동겸, , KiRi Weekly, 보험연구원 2011.12.19


언론기사
김은별, 장세희, ‘‘0%대 기준금리 + 양적완화’… 환율·인플레는?’, 아시아경제, 2020.3.27
박복영, ‘팬데믹 경제위기는 다른 위기와 다르다’, 한겨레, 2021.9.14
유환구, ‘7년 만에 종료된 美 양적완화 시대 ‘빛과 그림자’’, 한국일보, 2015.12.17
전슬기, ‘“인플레 내년까지…결국 극복” 파월 발언 속뜻은?’, 한겨레, 2021.9.30
전유진, ‘[A to Z of EU] 경제 통합의 길, 유로존 ②…유로화의 그림자’, 월드투데이, 2021.07.16
현윤경, ‘그리스, 8년만에 구제금융 ‘졸업’… 경제 정상화까진 갈길 멀어’, 연합뉴스, 2018.8.20
평화재단, ‘미국에 도전한 나라는 다 망한다…그러나 모두 코로나 이전 이야기?’, 프레시안, 2020.8.28

Edit 손현 Graphic 이은호, 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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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ㆍ유라시아

- 타지키스탄은 러시아로 이주한 자국 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0년 러시아발 해외송금액이 타지키스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러시아 연방이주청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로 이주하여 노동하면서 자국에 임금을 송금하는 타지키스탄인의 수는 100만 명에 달한다. 또한 타지키스탄 국립은행 산하 연구기관이 2019년 조사에 응한 타지키스탄인 중 70% 이상이 생계를 러시아발 해외송금액에 의존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 코로나19가 유행하자 러시아 내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해외송금액의 규모도 줄어들었다. 2021년 1~9월 러시아로부터 타지키스탄으로 유입된 해외송금액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9월에 비하여 50% 감소한 13억 달러(한화 약 1조 5,970억 원)를 기록하였다.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러시아발 해외송금액이 줄어든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타지키스탄은 또다른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 국가에서 시작된 대러제재가 확산되자 루블화의 가치가 30% 이상 떨어졌다. 루블화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루블화로 자국에 송금했던 타지키스탄 노동자들의 임금 가치도 동시에 하락하였다.

- 지난 2021년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타지키스탄과 러시아의 교역액은 11억 3,000만 달러(한화 약 1조 3,684억 원)를 기록하였다. 2021년 12월 말 타지키스탄을 방문한 러시아의 무역대표단을 이끈 예브게니 코렌코프(Yevgeny Korenkov) 대표단장은 2021년 교역액이 전년 대비 25% 늘어났으며, 특히 농산품 교역액은 2020년 500만 달러(한화 약 60억 5,500만 원)에서 2021년 1,050만 달러(한화 127억 1,550만 원)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또한 코렌코프 대표에 따르면, 2020~2021년 러시아 67개 지역 중 12개 지역이 타지키스탄과의 교역에서 80%를 차지하였다. 12개 지역 중 타지키스탄과 가장 활발하게 교역한 지역은 모스크바(Moscow), 상트페테르부르크(St.Petersburg), 모스크바시, 레닌그라드(Leningrad), 첼리아빈스크(Chelyabinsk) 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 무역 통계 사이트인 OEC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타지키스탄은 러시아에 의류 원자재와 견과류를 수출하였으며, 러시아로부터 주로 정제 석유를 수입하였다. 2019년 타지키스탄의 전체 수출액 3,580만 달러(한화 약 433억 5,380만 원) 중 면사 38.5%, 원면(Raw Cotton) 28.7%, 견과류 8%를 차지하였다. 한편 2019년 타지키스탄의 대러시아 수입액은 총 9억 5,300만 달러(한화 약 1조 1,540억 원)였으며, 이 중 정제 석유 29%, 비행기, 헬기류 11.4%를 차지하였다. 이외에도 타지키스탄은 러시아로부터 식용류, 설탕, 밀 등 농산품도 다량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타지키스탄의 경제학자인 포질존 파툴로에프(Foziljon Fatulloev)는 아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대러제재가 타지키스탄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앞으로 타지키스탄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파툴로에프는 대러제재로 러시아 내 타지키스탄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줄어들게 되면 타지키스탄 내 경제 상황도 악회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또한 파톨로에프는 타지키스탄이 가난과 실업률 증가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첨언하였다.

- 또 다른 타지키스탄의 경제 전문가인 루스타미 수흐로브(Rustami Suhrob)도 타지키스탄이 경제적으로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타지키스탄과 러시아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하였다. 수흐로브는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인들의 고용을 늘리고 타지키스탄 이주노동자 수를 낮추기 위해 강력한 이주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하였다. 한편 수흐로브에 따르면 현재 타지키스탄에서 진행중인 러시아와의 대규모 합동 프로젝트는 소수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문가들은 타지키스탄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도 대러제재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키르기스스탄 경제 전문가인 메데트 티울레게노프(Medet Tyulegenov)도 러시아발 해외송금액에 크게 의존하는 키르기스스탄도 대러제재로 인해 타지키스탄과 유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 대러제재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카자흐스탄도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카자흐스탄의 화폐인 텡게의 가치도 20% 이상 하락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날인 2월 25일 카자흐스탄 정부, 카자흐스탄 국립은행이 위기 대응 계획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카자흐스탄 국립은행은 인플레이션 통제, 외환 시장 안정화, 취업 및 일자리 창출 지원 등 다양한 대응 조치를 실시하였다. 또한 카자흐스탄은 외화와 금의 유출을 제한하였다. 3월 14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Qasym-Zhomart Toqaev)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국민들이 국외로 1만 달러(한화 약 1,245만 원) 이상 유출하는 것과 골드바 유출을 금지하는 결의안에 서명하였다.

Muratalieva, Nargiza. 2022. “What Consequences can Central Asian Countries Expect 해외경제 from Russia’s War in Ukraine?,” CABAR, February 28.

RadioFreeEurope/RadioLiberty, Kazakhstan Limits Outflows Of Hard Currency, Gold Amid Russia Sanctions, 2022.03.14.

[세종=뉴시스]옥성구 기자 = 정부가 최근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세가 확대되고 향후 수출회복세 제약 등에 따라 경기 둔화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경고 수위를 높인 뒤 두 달 연속 같은 흐름을 이어갔다.

기획재정부는 20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7월호에서 "고용과 대면서비스업 회복으로 내수가 완만한 개선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외여건 악화 지속 등으로 물가상승세가 확대되고 향후 수출회복세 제약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국의 금리인상 가속화, 중국 성장 둔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지속 및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더욱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그린북 6월호에서 올해 처음으로 '경기 둔화 우려'라는 표현을 쓴데 이어 이번 달에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에 더해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며 어두운 전망을 이어간 것이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국내 실물지표의 경우 소폭 긍정적인 모습들이 나타났다"면서도 "해외적인 측면에서 불안 요인들이 계속 확대되고 있어 지난달 '경기 둔화 우려' 부분에 대해 아직까지 스탠스를 조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기 둔화 우려는 지표상으로도 나타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0%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 수출가격 상한제 도입 가능성 등 국제유가 상승 압력이 계속되며 석유류 가격이 39.6%나 뛰면서 오름세가 커졌다. 여기에 5개월 만에 농산물(1.6%)이 상승 전환됐고, 돼지고기 등 축산물(10.3%)도 상승 폭이 확대됐다.

체감지표인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7.4% 올라 상승 폭이 커졌다. 신선식품지수도 과일과 신선채소 가격이 뛰며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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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5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1% 쪼그라들었다. 이 수치가 3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내구재 판매가 1.2%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준내구재(-1.2%)와 비내구재(-0.3%) 판매가 줄어든 탓이다.

1분기 설비 투자는 전년 대비 3.9% 감소했다. 설비 투자조정압력 증가 등은 향후 설비 투자에 긍정적 요인이나, 5월 기계수주가 줄어들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하락한 점 등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수출은 석유제품·반도체를 중심으로 1년 전보다 5.2% 증가했지만,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수출 증가율과 비교해 둔화됐다. 특히 중국에 대한 수출이 1% 감소했다. 수출입차이는 25억 7만 달러로 줄어 3개월 연속 적자 흐름을 보였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와 향후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 대비 각 0.1%포인트(p)씩 오르며 반등에 성공했지만, 상승 흐름이 지속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미국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우려 등의 영향으로 지난달 말 코스피 지수는 2332.6으로 전월 말 대비 13.15% 감소했고, 코스닥 지수는 745.4로 전월 말과 비교해 16.57% 쪼그라들었다.

환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달러화지수 상승과 외국인 주식자금 유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업체의 달러화 수요 등 영향으로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1298.4원을 기록했다.

다만 거리두기 해제 영향으로 서비스업은 회복세를 보였다. 5월 서비스업 생산은 숙박·음식점업과 예술·스포츠·여가관련 서비스업 등 증가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7.5% 상승했다.

5월 전(全)산업 생산은 1년 전보다 0.8% 증가했다. 광공업(0.1%), 건설업(5.9%) 등에서 생산이 늘었지만, 공공행정은 2.7% 줄었다.

고용시장 훈풍은 계속됐다. 지난달 취업자는 2847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84만1000명 늘었다. 동월 기준 2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15~64세 고용률은 69.1%로 집계됐다. 1989년 통계 작성 이래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았다.

지난달 실업자는 88만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만5000명 줄었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실업률은 3.0%로 1년 전보다 0.8%p 하락했다.

기재부는 "민생·물가 안정을 위한 전방위 대응 강화와 함께 경기대응·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 선순환을 위한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은경 칼럼] 등소평에게 배우는 경제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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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칼럼] 등소평에게 배우는 경제혁신

사진은 1987년의 등소평(덩샤오핑)의 모습.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30 대 세계 청년들에게 ‘ 중국 ’ 하면 떠올리는 모습에 대해 물어봤더니 ‘ 현대적 기술력 ,’ ‘ 빠른 경제발전 ,’ ‘ 강대국의 등장 ’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 중국이 이제는 경제대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청년 세대들이 떠올리는 중국의 모습은 1960 년 전후 3~4 년 대약진운동으로 2 천 5 백만이 아사한 나라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 이렇듯 경제발전을 이룩한 , 잘 사는 나라라는 중국에 대한 인식을 세계 사람들에게 뿌리 내리게 만든 지도자 등소평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

1966~1976 년의 문화대혁명 시기 , 실용주의자였던 등소평은 자본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 즉 ‘ 주자파 ’ 로 몰려 해임 됐는데요 . 모택동의 사망 이후 1977 년 7 월 22 일 당 10 기 3 중 전회에서 등소평은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위 부주석 등의 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 복귀 후 이듬해 당 11 기 3 중 전회에서 등소평은 ‘ 사상해방과 실사구시 , 일치단결 ’ 을 내걸고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합니다 . 이것이 오늘날의 눈부신 중국의 발전을 만든 첫 단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때부터 공산당의 당장을 ‘ 계급투쟁 ’ 에서 ‘ 경제발전 ’ 으로 바꾸고 국가적 관심을 정치이념 논쟁에서 주민생활 개선을 위한 경제로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 이렇게 시작한 중국의 경제발전은 1977 년 1 인당 국내총생산 185 달러에서 2022 년 12,550 달러로 껑충 뛰어 오릅니다 . 이건 국가 경제발전을 핵심목표로 삼은 등소평의 신념이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

등소평은 경제발전을 위한 실용주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고요 . 누구도 정치체제에 있어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공산당 일당주의를 천명함으로써 정치분야에서 비효율적 에너지 소모를 차단했습니다 .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을 이행하기 위해서 당분간 충분히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 앞으로 100 년간은 사회주의 현대화를 건설하겠는 의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 생산력을 한층 더 올리기 위해 다양한 소유제 경제를 발전시키는 제도를 견지하는 내용을 중국 공산당 당헌에 포함시켰습니다 .

이에 따라 북한의 협동농장과 같은 인민공사를 점진적으로 해체했는데요 . 개인 생산의 사유화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영역에선 그대로 사유재산을 허용해주었는데 그게 농촌이었기 때문입니다 . 집단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농사를 지어서 개인 이익을 보장해줬습니다 . 또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허용하면서 생산물 유통방식에서도 국가수매 분량 외의 생산량은 개인이 알아서 처분할 수 있었기에 개인소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 전국적 차원의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선전 , 해남도 등 5 곳을 경제특구로 선정해서 해외 자본을 유치해서 선진기술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 현재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혁신적 대기업들이 싹을 틔우고 발전할 수 있는 자본을 확보하게 됩니다 . 여기에 더해 대도시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도시 실업자들이 돈벌이 할 기회도 필요했기에 , 개인들이 사업을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

이런 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등소평의 신념은 안정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 정치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높이 내세우면서 자본주의 방식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이 모순적으로 보여 갈등을 일으킬 법도 했는데요 .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향한 꿈은 ‘ 중국식 사회주의 ’ 그리고 ‘ 사회주의 시장경제론 ’ 을 발전시키며 주민들을 설득했고요 . 그 결과는 세계 두 번째의 경제 대국의 중국을 만들었습니다 .

일부 전문가들은 등소평이 이렇게 큰 그림의 경제발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1920 년에 16 살 나이로 프랑스로 유학갔던 것이 크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6 년간 체험했던 프랑스는 당시 1 차세계대전을 끝내고 세계적인 혁신가들이 다양한 꿈을 가지고 몰려들던 황금시대였습니다 . 문화 예술은 물론 기술 , 과학 , 경제 , 지식 분야까지 세계 지성인들이 동경하는 곳이었습니다 . 무너져가는 중국과 황금기를 누리던 프랑스를 보며 등소평이 꿈꾸던 조국 중국도 그렇게 발전시키겠다는 신념을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

등소평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도 자유롭고 혁신적인 스위스에서 10 대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 유학시절 등소평이 가졌던 잘 사는 조국에 대한 꿈을 김정은 위원장도 충분히 가졌으리라 생각되는데요 . 여기에 더해 북한당국이 북한 인민들에 대한 믿음만 더 굳건히 가진다면 경제분야에서 충분히 중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을 겁니다 . 즉 북한당국이 인민들에게 모든 부문에서 ‘ 경직을 풀고 새 세기에 맞게 대담하게 혁신하고 새 것을 창조해 나갈 것을 요구 ’ 하는데요 . 인민들을 믿고 당국이 먼저 혁신하고 경직도 풀게 되면 중국이 했던 경제혁신을 북한도 실현하게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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